안녕하세요, 코딩은 못 하지만 IT가 너무 궁금한 비개발자 루카(Luka)입니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쓴 건 전부 뭔가 목적이 있는 물건이었어요. 번역기, 상담봇, 대화 도우미. 그리고 대부분 "만들었는데 사람이 안 와요"로 끝났고요.

이번엔 처음부터 목적이 없어요. 쓸모없는 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 제일 자주 켜요.

남의 거미를 봤어요

10월 초에 트윗을 하나 봤어요. @sintowdesign이라는 분이 만든 크롬 확장 프로그램인데, 거미 한 마리가 웹페이지 위를 기어다니면서 문장에 형광펜을 칠해요.

보고 바로 따라 하기로 했어요. 거미 대신 무당벌레로요. AI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난 무당벌레로."

그게 10월 4일이에요.

뭘 하는 애냐면요

크롬 오른쪽 위에 무당벌레 아이콘이 생겨요. 누르면 이렇게 돼요.

  1. 화면 가장자리에서 무당벌레가 걸어 들어와요.
  2. 글을 찾아가서 문장을 따라 기어요. 지나간 자리에 빨간 형광펜이 남아요. 한 번에 한 줄에서 네 줄.
  3. 한 묶음을 칠하고 나면 가끔 낙서를 해요. 동그라미, 물결 밑줄, 별. 무당벌레가 직접 그 모양대로 걸어서 그려요.
  4. 무당벌레를 누르면 등껍질이 열리고, 속날개를 파닥이면서 화면 밖으로 날아가요. 자국은 남아요.
  5. 화면 아래 "무당벌레 끄기" 버튼을 누르면 벌레도 자국도 다 사라져요.

이 블로그에 풀어놔 봤어요.

제 글 제목을 따라 기어가는 중이에요. 지나간 자리가 빨갛게 칠해져요

조금 기다렸더니 이렇게 해놨어요.

한참 뒤. "열어봤더니"에 동그라미, "공모전 나갔다가 떨어진"에 물결 밑줄

"열어봤더니"에 동그라미를 치고, "공모전 나갔다가 떨어진"에 물결 밑줄을 그어놨어요. 아무 생각 없이 긋는 건데 하필 거기예요. 제 벌레가 제 탈락에 밑줄을 쳤어요.

전체 화면. 프로필 문구에도 칠해놨고, 아래 가운데에 "무당벌레 끄기" 버튼이 보여요

다리도 그냥 달려 있는 게 아니에요. 걸을 때 세 다리씩 번갈아 움직여요. 한쪽 앞다리·뒷다리랑 반대쪽 가운뎃다리가 같이요. 진짜 곤충이 그렇게 걷는대요. 이건 제가 시킨 게 아니라 AI가 알아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날 시간표

시각 한 일
15:38 첫 버전 완성
17:01 끄기 버튼을 화면 위에서 아래 가운데로 옮김

고친 게 버튼 위치 하나예요. 이 블로그에 쓴 것 중에 삽질이 제일 적었어요. 써보고 나온 말도 한마디였어요.

"잘 다니네."

스토어에 안 올리고 내 크롬에만 깔기

확장 프로그램은 보통 크롬 웹스토어에서 받잖아요. 저는 스토어에 안 올렸어요. 그래도 제 크롬에는 깔 수 있어요.

  1. 크롬 주소창에 chrome://extensions를 쳐요.
  2. 오른쪽 위 개발자 모드를 켜요.
  3. 압축해제된 확장 프로그램을 로드합니다를 누르고, 확장 프로그램 폴더를 골라요.
  4. 주소창 옆 퍼즐 조각을 눌러서 무당벌레를 고정해요.

"개발자 모드"라는 이름이 겁나게 생겼는데, 그냥 스위치 하나예요. 개발자가 아니어도 켤 수 있어요.

폴더를 지우면 벌레도 사라져요

이렇게 깐 확장 프로그램은 스토어에서 받은 것과 다른 점이 있어요. 크롬 안으로 복사돼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크롬이 그 폴더를 매번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탕화면에 있는 그 폴더를 지우거나 옮기면 무당벌레가 꺼져요. 정리한다고 폴더를 치우면 벌레도 같이 치워지는 거예요.

강의 나갈 때 쓰는 노트북에도 깔았는데, 폴더를 압축해서 옮긴 다음 거기서 똑같이 불러왔어요. 미니PC랑 노트북에 각각 폴더가 하나씩 있어요. 버튼 위치를 고쳤을 때도 두 군데를 따로 고쳐야 했어요.

권한 얘기를 하나만 할게요

확장 프로그램을 깔 때 "모든 웹사이트의 데이터를 읽고 변경할 수 있습니다" 같은 무서운 문구가 뜰 때가 있어요.

무당벌레는 그 권한을 안 받아요. 제가 아이콘을 누른 그 탭에서만 움직여요. 누르지 않은 다른 탭에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 그리고 페이지에 있는 글을 고치지도 않아요. 글 위에 투명한 막을 한 장 덮고 그 위에 그리는 거예요.

이것도 제가 요구한 게 아니라 AI가 그렇게 설계해서 가져왔어요. 설계 문서에 "설치 시 모든 사이트 접근 권한 요청 없음"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남이 만든 확장 프로그램을 깔 때 뭘 봐야 하는지를, 제 걸 만들면서 처음 알았어요.

못 들어가는 곳도 있어요. 크롬 설정 화면이나 웹스토어 같은 데는 못 들어가요. 크롬이 막아놨어요.

안 한 것들

설계 문서 끝에 "안 하는 것"이 적혀 있어요.

  • 여러 마리
  • 웹스토어 등록
  • 설정 화면

지금도 안 했어요. 한 마리면 충분히 웃겨요.

왜 이게 제일 자주 켜질까요

제가 만든 것들을 떠올려 봤어요. 랭킹에 저 혼자 있는 게임, 손님이 거의 없는 상담봇, 메일을 아직 안 보낸 대화 도우미.

그건 전부 남이 써줘야 완성되는 물건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안 오면 미완성인 채로 남아요.

무당벌레는 저 혼자 쓰려고 만들었어요. 제가 켜면 그걸로 끝이에요. 올 사람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쓸 데도 하나 생겼어요. 저는 강의를 하는데, 10월 6일 수업에서 다들 집중력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화면에 얘를 풀어놨어요.

"저게 뭐야?"

교실이 깼어요. 엄청 재밌어하셨어요.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시 모으는 데 이만한 게 없더라고요. 사람 모으려고 만든 상담봇은 손님이 거의 없는데, 그냥 웃기려고 만든 벌레는 한 번에 교실 하나를 잡았어요.

쓸모없다고 썼는데, 쓸모가 생겼어요. 강의 도구예요.


아이디어의 원본은 @sintowdesign 님의 거미 확장 프로그램이에요. 저는 벌레만 바꿨어요.

이런 삽질을 모아놓은 전자책 『AI로 토스 미니앱 11개 만든 비개발자의 역습』은 크몽에 있어요.